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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글 |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산책> 中

크리스마스 때 나는, 제발 트레일의 일부분이라도 같이 갈 수 없겠느냐고 사정하는 문구를 넣어 수없이 많은 카드를 지인들에게 보냈다. 당연하다는 듯 아무도 회신을 보내 오지 않았다. (...) 그는 공항의 수하물 벨트에서 돌고 있는 자신의 가방을 가리킨 뒤 나보고 집어 오라고 했다. 그 가방은 녹색의 군인용 더플백이었다. 최소한 50kg은 돼 보였다. 그는 놀란 내 표정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스니커즈가 잔뜩 들어 있다고!" (p.42, 48)

그리즐리 베어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공포에 질린 작가는 주변인들에게 동행을 권유하는 편지를 보냈지만 모두 무시당하고-_-;; 겨우 자신과 예전에 유럽 여행을 함께 떠났다가 사이가 나빠지고 600달러 빚만 주었던 카츠와 동행하게 됩니다. '매우 불편한 밤을 보내고 난 오손 웰즈(p.47)'같은 몸집을 하고 나타난 카츠는 자랑스레 스니커즈가 가득 든 배낭을 보이는데, 문제는 저자가 곰은 스니커즈를 아주 좋아한다 (= 냄새를 맡으면 텐트를 습격한다)는 내용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이겠죠. (-ㅁ-)

숲은 여느 공간과는 다르다. 무엇보다도 입체적이다. 나무들이 당신을 에워싸고 위에서 짓누르며 모든 방향에서 압박한다. 경치를 가로막고 당신이 어디 있는지 분간하지 못하도록 한다. 당신을 왜소하고 혼란스럽고 취약하게 해 놓은 다음, 마치 낯선 사람들의 무수한 다리 사이에서 길을 잃은 아이가 된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사막이나 초원에 서면 광활한 공간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된다. 반면, 숲에 서면 당신은 오직 그걸 감지하는 게 고작이다. 숲은 거대하면서도 특징 없는, 게다가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들은 살아 있다. (p.80)

가만히 누워서 묘하게도 명료하고 분명한 밤 숲의 소리에 귀기울이면 바람과 나뭇잎이 안달하면서 내쉬는 한숨과 나뭇가지의 지루한 신음, 끊임없는 중얼거림과 살랑거림에 마치 전기가 나간 회복기의 환자 병동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면서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p.90)

후웃. 왠지 <헬무트>에서 요정들이 살던 숲을 떠올리게 하는 문구로군요. 그러고 보니 <헬무트>는 완결이 되었나? 안 되었을 것 같긴 하지만;; 4장의 초반에 등장하는 '숲이라는 존재가 주는 무시무시한 공포'는 그 전에 나오는 숲 속의 존재들 - 곰이라든지 늑대 등의 야생동물이나 얻을 수 있는 병, 바이러스 등 - 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공포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즉 원시적이고 근원에 가까운 자연이라는 존재 앞에서 느끼는 무기력함과 자괴감이, 숲이라는 자연에 대면한 인간들을 광란의 상태로까지 몰아갈 수 있다는 거죠. 지도 속 작은 녹색 얼룩에 불과한 채터후치Chattahoochee도, 실제 빌 브라이슨과 그의 동료 카츠가 나흘을 줄창 걸어야 도로가 나오고 여드레가 넘게 걸어야 마을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하니까요. 그나저나, 미국의 단 2%만이 개발된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니, 미국이라는 나라의 크기는 정말 상상 이상이로군요. (떠억)

오늘날 국립공원관리국은 야생 동식물을 멸종 위기에 몰아넣기 위해 조심스러운 접근 방법을 쓰고 있다. 바로 '직무유기'다. 관리국은 어떤 종이든 연구에 거의 돈을 쓰지 않는다. 예산의 3%도 안된다. (...) 공원관리국 직원에게 그것에 대해 뭘 하고 있느냐고 물어보면, 아마도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하고 있다." 이 말을 해석하면 '우리는 그들이 죽어가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 된다. (...) 수십년 동안 자연에 개입해 엉망을 만들어 놓더니, 이제 명백히 개입이 필요한 시점에서는 자연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이 사람들, 정말 경이로운 존재들이다. (p.154-157)

여기서도 그렇고, 앞의 삼림에 대한 언급에서도 나오지만 숲 관련 정부 부처의 정책에 대해서 브라이슨은 주로 「멸종시키고 파괴시키기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직원들 개인은 다들 따뜻하고 친절하며 좋은 사람들이지만 문제는 관리국의 정책. 연구의 부족, 쓸데없는 데 돈을 낭비하는 행위,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직원들의 연봉 삭감과 해고 등등.

그가 행복해하는 이유는 곧 밝혀졌는데, 쥐를 일곱 마리나 잡았고 그것을 흡족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 트레일에선 사람들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될 수 있는지가 나를 때때로 불편하게 했다 - 다른 등산객들도 마찬가지리라.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p.159-160)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가르쳐 준 게 하나 있다면, 그건 우리 둘 다 삶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낮은 수준의 환희를 정말 행복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p.201)

트레킹을 하면서 브라이슨과 카츠가 겪는 심경의 변화는 곳곳에 드러나고 있습니다만, 이 두 구절이 꽤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오래된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좋은 것이다. 60년이 지나서도 조용히 숨쉬면서, 잘난 체하지 않으면서도 찬란하고, 창설 정신에 충실하면서 (...) 그건 정말 기적이다. (p.171)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있을 때는 숲이야말로 무한한, 그리고 온전한 우주였다. (...) 그러나 트레일에서 내려오면, 멀리 내려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처럼 어딘가로 차를 몰면 얼마나 기만을 당했었는지 깨닫게 된다. 여기서는 산과 숲은 단지 배경일 뿐이다. 여기에 현실의 세계 (...) 끔찍한 상업적 세계의 끝도 없이 펼쳐진 현란함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카츠마저도 그게 싫은 모양이었다. "제기랄, 흉측하네." (p.186)

점차 현실 세계보다 아름다운 숲을 사랑하기 시작한 브라이슨과 카츠. 이 대목에서 브라이슨은 이미 사라진 거대한 아메리칸 밤나무에 대해 페이지를 꽤 할애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초 갖가지 희귀한 식물 종들이 분포해 있는 미국 숲에서 발견된 씨앗이나 가지들을 채집해서 유럽에 갖다 팔기 시작했을 때부터 미국 숲의 변화는 시작되었다고 하죠. 엄청나게 큰 아메리칸 밤나무 옆에서 소풍을 즐기고 있는 20세기 초 사람들의 사진 속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p.194)면서 아쉬움을 표하고 있어요. 이것은 벌목이나 채집이 아니라 나무를 병들게 한 균류때문이었다는군요. 덩치는 크지만 민감한 존재인 나무는 예상치 않은 적을 만나면 힘없이 허물어지고 마는데, 아메리칸 밤나무 또한 그 희생양이었다고 해요. 브라이슨의 안타까움이 책 밖으로까지 전해져 오는 듯 했습니다.

(...) 내가 34년 동안 걷잡을 수 없이 타고 있는 불가마의 한가운데서 아스팔트의 얇디얇은 막을 딛고 서 있는 것을 깨달았다. 북미 대륙을 통틀어, 서 있는 장소로는 가장 현명치 않은 지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상상력의 과잉일지도 모르지만, 땅이 마치 매트리스 위를 걷는 것처럼 말랑말랑하고 꿈틀꿈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p.283)

한때 작은 광산마을이었던 센트레일리아는 24만 톤의 무연탄 위에 올라 앉은 마을이었다고 하죠. 무연탄은 한 번 불이 붙기 시작하면 끝없이 타는 성질이 있다고 하는데, 1962년에 걷잡을 수 없는 광산 화재의 희생양이 되고 만 이 마을은 결국 연방정부의 의해 비워지고, 지금은 건물도 사람도 하나 없는 '땅'이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어쩐지 으스스한 이야기죠.

우리는 더 이상 산사람인 척 하지 않기로 했다. 실제로 아니었으니까. (...) "여기 아닌 어디라도요." (p.405-406)

어쨌거나 우린 시도를 했다. 카츠가 옳았다. (...) 우린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던 것이다. (p.415)

헌드레드 마일 윌더니스에서 카츠를 잃어버릴 뻔 하고 - 설마, 설마, 하면서도 산에서 잃어버린 동행을 다시 찾는다는 것이 워낙 힘들기 때문에, 게다가 불의의 사고도 얼마든지 가능한 곳이기 때문에 읽으면서 조마조마했어요. 브라이슨도 마찬가지지만 그의 동료 카츠가 정말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볼 수 있죠. 카츠의 음주벽때문에 처음으로 크게 다툰 둘의 화해 장면은 꽤 찡합니다. :) 겨우 서로를 만난 뒤에 트레일에서 내려오기로 결정하고 택시를 탄 둘은 '여기 아닌 어디라도' 가고 싶어하지만, 그 뒤로도 가끔 트레일에 다시 오를까 하는 말을 주고받곤 합니다. 실제로 가진 않았지만요. 결국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끝까지 종주하지는 못했지만 아메리카의 자연에 대해서 감탄하고, 산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게 되고, 트레킹을 하면서 겪고 느끼고 배웠던 수많은 것들을 가슴 한 곳에 소록하니 묻어두고 살아가게 되는 거죠.

등산을 워낙 싫어하는 저의 생각이, 이 책을 읽고 바뀌었느냐? 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글쎄- 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손사래치면서 「도대체 산을 왜 오르는 거지?」라고 되묻지는 않겠지요. 브라이슨 덕분에 거의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어떤 마음으로 산을 오르고, 왜 내려오고 나서도 다시 오르고 싶어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저는 겪어보지 못한 그 경탄과 뿌듯함은 중독적인 거겠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주말에 당장 짐을 싸 남산이라도 오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는 건 절대 아니고요. (크크)

- 생각보다는 오래 걸렸어요. 띄엄띄엄 읽긴 했지만 거의 일주일 가량 읽었네요. 흠.
Posted by 레이(Ray)
관련글 |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산책> 中

크리스마스 때 나는, 제발 트레일의 일부분이라도 같이 갈 수 없겠느냐고 사정하는 문구를 넣어 수없이 많은 카드를 지인들에게 보냈다. 당연하다는 듯 아무도 회신을 보내 오지 않았다. (...) 그는 공항의 수하물 벨트에서 돌고 있는 자신의 가방을 가리킨 뒤 나보고 집어 오라고 했다. 그 가방은 녹색의 군인용 더플백이었다. 최소한 50kg은 돼 보였다. 그는 놀란 내 표정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스니커즈가 잔뜩 들어 있다고!" (p.42, 48)

그리즐리 베어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공포에 질린 작가는 주변인들에게 동행을 권유하는 편지를 보냈지만 모두 무시당하고-_-;; 겨우 자신과 예전에 유럽 여행을 함께 떠났다가 사이가 나빠지고 600달러 빚만 주었던 카츠와 동행하게 됩니다. '매우 불편한 밤을 보내고 난 오손 웰즈(p.47)'같은 몸집을 하고 나타난 카츠는 자랑스레 스니커즈가 가득 든 배낭을 보이는데, 문제는 저자가 곰은 스니커즈를 아주 좋아한다 (= 냄새를 맡으면 텐트를 습격한다)는 내용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이겠죠. (-ㅁ-)

숲은 여느 공간과는 다르다. 무엇보다도 입체적이다. 나무들이 당신을 에워싸고 위에서 짓누르며 모든 방향에서 압박한다. 경치를 가로막고 당신이 어디 있는지 분간하지 못하도록 한다. 당신을 왜소하고 혼란스럽고 취약하게 해 놓은 다음, 마치 낯선 사람들의 무수한 다리 사이에서 길을 잃은 아이가 된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사막이나 초원에 서면 광활한 공간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된다. 반면, 숲에 서면 당신은 오직 그걸 감지하는 게 고작이다. 숲은 거대하면서도 특징 없는, 게다가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들은 살아 있다. (p.80)

가만히 누워서 묘하게도 명료하고 분명한 밤 숲의 소리에 귀기울이면 바람과 나뭇잎이 안달하면서 내쉬는 한숨과 나뭇가지의 지루한 신음, 끊임없는 중얼거림과 살랑거림에 마치 전기가 나간 회복기의 환자 병동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면서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p.90)

후웃. 왠지 <헬무트>에서 요정들이 살던 숲을 떠올리게 하는 문구로군요. 그러고 보니 <헬무트>는 완결이 되었나? 안 되었을 것 같긴 하지만;; 4장의 초반에 등장하는 '숲이라는 존재가 주는 무시무시한 공포'는 그 전에 나오는 숲 속의 존재들 - 곰이라든지 늑대 등의 야생동물이나 얻을 수 있는 병, 바이러스 등 - 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공포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즉 원시적이고 근원에 가까운 자연이라는 존재 앞에서 느끼는 무기력함과 자괴감이, 숲이라는 자연에 대면한 인간들을 광란의 상태로까지 몰아갈 수 있다는 거죠. 지도 속 작은 녹색 얼룩에 불과한 채터후치Chattahoochee도, 실제 빌 브라이슨과 그의 동료 카츠가 나흘을 줄창 걸어야 도로가 나오고 여드레가 넘게 걸어야 마을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하니까요. 그나저나, 미국의 단 2%만이 개발된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니, 미국이라는 나라의 크기는 정말 상상 이상이로군요. (떠억)

오늘날 국립공원관리국은 야생 동식물을 멸종 위기에 몰아넣기 위해 조심스러운 접근 방법을 쓰고 있다. 바로 '직무유기'다. 관리국은 어떤 종이든 연구에 거의 돈을 쓰지 않는다. 예산의 3%도 안된다. (...) 공원관리국 직원에게 그것에 대해 뭘 하고 있느냐고 물어보면, 아마도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하고 있다." 이 말을 해석하면 '우리는 그들이 죽어가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 된다. (...) 수십년 동안 자연에 개입해 엉망을 만들어 놓더니, 이제 명백히 개입이 필요한 시점에서는 자연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이 사람들, 정말 경이로운 존재들이다. (p.154-157)

여기서도 그렇고, 앞의 삼림에 대한 언급에서도 나오지만 숲 관련 정부 부처의 정책에 대해서 브라이슨은 주로 「멸종시키고 파괴시키기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직원들 개인은 다들 따뜻하고 친절하며 좋은 사람들이지만 문제는 관리국의 정책. 연구의 부족, 쓸데없는 데 돈을 낭비하는 행위,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직원들의 연봉 삭감과 해고 등등.

그가 행복해하는 이유는 곧 밝혀졌는데, 쥐를 일곱 마리나 잡았고 그것을 흡족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 트레일에선 사람들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될 수 있는지가 나를 때때로 불편하게 했다 - 다른 등산객들도 마찬가지리라.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p.159-160)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가르쳐 준 게 하나 있다면, 그건 우리 둘 다 삶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낮은 수준의 환희를 정말 행복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p.201)

트레킹을 하면서 브라이슨과 카츠가 겪는 심경의 변화는 곳곳에 드러나고 있습니다만, 이 두 구절이 꽤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오래된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좋은 것이다. 60년이 지나서도 조용히 숨쉬면서, 잘난 체하지 않으면서도 찬란하고, 창설 정신에 충실하면서 (...) 그건 정말 기적이다. (p.171)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있을 때는 숲이야말로 무한한, 그리고 온전한 우주였다. (...) 그러나 트레일에서 내려오면, 멀리 내려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처럼 어딘가로 차를 몰면 얼마나 기만을 당했었는지 깨닫게 된다. 여기서는 산과 숲은 단지 배경일 뿐이다. 여기에 현실의 세계 (...) 끔찍한 상업적 세계의 끝도 없이 펼쳐진 현란함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카츠마저도 그게 싫은 모양이었다. "제기랄, 흉측하네." (p.186)

점차 현실 세계보다 아름다운 숲을 사랑하기 시작한 브라이슨과 카츠. 이 대목에서 브라이슨은 이미 사라진 거대한 아메리칸 밤나무에 대해 페이지를 꽤 할애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초 갖가지 희귀한 식물 종들이 분포해 있는 미국 숲에서 발견된 씨앗이나 가지들을 채집해서 유럽에 갖다 팔기 시작했을 때부터 미국 숲의 변화는 시작되었다고 하죠. 엄청나게 큰 아메리칸 밤나무 옆에서 소풍을 즐기고 있는 20세기 초 사람들의 사진 속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p.194)면서 아쉬움을 표하고 있어요. 이것은 벌목이나 채집이 아니라 나무를 병들게 한 균류때문이었다는군요. 덩치는 크지만 민감한 존재인 나무는 예상치 않은 적을 만나면 힘없이 허물어지고 마는데, 아메리칸 밤나무 또한 그 희생양이었다고 해요. 브라이슨의 안타까움이 책 밖으로까지 전해져 오는 듯 했습니다.

(...) 내가 34년 동안 걷잡을 수 없이 타고 있는 불가마의 한가운데서 아스팔트의 얇디얇은 막을 딛고 서 있는 것을 깨달았다. 북미 대륙을 통틀어, 서 있는 장소로는 가장 현명치 않은 지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상상력의 과잉일지도 모르지만, 땅이 마치 매트리스 위를 걷는 것처럼 말랑말랑하고 꿈틀꿈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p.283)

한때 작은 광산마을이었던 센트레일리아는 24만 톤의 무연탄 위에 올라 앉은 마을이었다고 하죠. 무연탄은 한 번 불이 붙기 시작하면 끝없이 타는 성질이 있다고 하는데, 1962년에 걷잡을 수 없는 광산 화재의 희생양이 되고 만 이 마을은 결국 연방정부의 의해 비워지고, 지금은 건물도 사람도 하나 없는 '땅'이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어쩐지 으스스한 이야기죠.

우리는 더 이상 산사람인 척 하지 않기로 했다. 실제로 아니었으니까. (...) "여기 아닌 어디라도요." (p.405-406)

어쨌거나 우린 시도를 했다. 카츠가 옳았다. (...) 우린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던 것이다. (p.415)

헌드레드 마일 윌더니스에서 카츠를 잃어버릴 뻔 하고 - 설마, 설마, 하면서도 산에서 잃어버린 동행을 다시 찾는다는 것이 워낙 힘들기 때문에, 게다가 불의의 사고도 얼마든지 가능한 곳이기 때문에 읽으면서 조마조마했어요. 브라이슨도 마찬가지지만 그의 동료 카츠가 정말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볼 수 있죠. 카츠의 음주벽때문에 처음으로 크게 다툰 둘의 화해 장면은 꽤 찡합니다. :) 겨우 서로를 만난 뒤에 트레일에서 내려오기로 결정하고 택시를 탄 둘은 '여기 아닌 어디라도' 가고 싶어하지만, 그 뒤로도 가끔 트레일에 다시 오를까 하는 말을 주고받곤 합니다. 실제로 가진 않았지만요. 결국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끝까지 종주하지는 못했지만 아메리카의 자연에 대해서 감탄하고, 산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게 되고, 트레킹을 하면서 겪고 느끼고 배웠던 수많은 것들을 가슴 한 곳에 소록하니 묻어두고 살아가게 되는 거죠.

등산을 워낙 싫어하는 저의 생각이, 이 책을 읽고 바뀌었느냐? 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글쎄- 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손사래치면서 「도대체 산을 왜 오르는 거지?」라고 되묻지는 않겠지요. 브라이슨 덕분에 거의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어떤 마음으로 산을 오르고, 왜 내려오고 나서도 다시 오르고 싶어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저는 겪어보지 못한 그 경탄과 뿌듯함은 중독적인 거겠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주말에 당장 짐을 싸 남산이라도 오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는 건 절대 아니고요. (크크)

- 생각보다는 오래 걸렸어요. 띄엄띄엄 읽긴 했지만 거의 일주일 가량 읽었네요. 흠.
Posted by 레이(Ray)